한국퓨전음식 홍보대사 한인2세 나애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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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Lis Ra (나애진)
28세
아르헨티나요리학교 요리기술 제빵 전공
Niño Gordo 레스토랑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따메스 1810번지
“니뇨 고르도” 레스토랑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주 유명한 내 요리사 친구가 2년 전 라 까르니세리아 이 쵸리(La Carnicería y Chori)에 특별한 쵸리빤을 요리하러 갔을 때 나는 그 쵸리이벤트를 보러갔다가 그곳의 주인인 뻬드로 뻬냐를 알게 됐다. 뻬드로는 나한테 한국식 쵸리빤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김치가 들어간 쵸리빤을 만들게 되었고 거기에다 풀은 계란도 곁들였다. 2주 후에 그 친구는 한국식 레스토랑을 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나한테 말했고 내가 거기에서 요리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동양음식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더군다나 그건 친구가 나한테 지나가는 말로 한 아이디어였을 뿐이었다. 나는 학교를 수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최고급 요리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는 친구에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멜리아호텔에서 일했고 런던시티와 뻬르뚜띠 체인점에서 자문을 맡았다. 나는 플레이팅을 가르치면서 여러 지점을 돌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나자 나는 그 일에 발전이 없자 싫증이 나서 그만두었고 개인 트레이너로 일했다. 요리를 잠시 쉴 필요가 있어서 약 6개월 동안 그만두었는데, 지난 여름에 뻬드로는 임대할 가게를 이미 찾아 놓았고 레스토랑 자리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컨셉트에 대해 나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는데 바로 한국요리가 믹스된 동양의 맛을 가진 아르헨티나식 빠리쟈. 이 아이디어가 내 마음에 더 들었다. 내가 일하지 않고 있는 기간 동안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요리하고 먹기를 좋아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았는데, 말을 하자면 위에 거품과 비트가 곁들여진 작은 것은 먹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내가 편안해지는 좋은 음식이 좋다. 거기에서 아르헨티나 음식에 내가 아는 동양의 맛을 믹스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곳의 대표적인 음식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메뉴판의 대략 80%는 나와 주방장, 주인인 뻬드로와 함께 만들었다. 흉선(mollejas)을 삶고 튀긴 후에 고추가루로 만든 소스를 묻힌 것이 있다. 그 튀긴 췌장 밑에 까는 옥수수는 미소로 만든 소스와 구운 버터로 태운다. 배추, 실란트로(고수), 참기름이 들어간 스시 식초로 만든 양념장이 들어간 샐러드와 같이 나간다. 그게 가장 많이 팔리는 요리들 중의 하나이다. 매우 인기 있는 다른 음식으로는 빠리쟈판에서 굽는 400g의 등심인데 고추장, 사과, 양파를 넣어 졸인다. 사람들이 샌드위치처럼 먹게 하자는 아이디어이다. 상추, 밥 한 공기, 미역무침과 같이 서빙한다.
한국인들과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고기 빠리쟈에 나중에 미역을 곁들이는 것은 생소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좋아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가 서빙하는 요리들의 절반은 무엇인지 모른다. 오토노미야키 또르띠쟈(tortilla okonomiyaki)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나중에 먹어보고는 “정말 희한한 맛이네!”라고 말하지만 마음에 들어 한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맛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본다. 곱창, 삼겹살(panceta), 흉선(mollejas), 고기... 기본은 아르헨티나요리, 빠리쟈에 있고 우리는 거기에 동양의 맛으로 장식을 한다. 게다가, 우리 레스토랑에서는 전식과 후식이 없다. 순서가 있지 않고 모든 음식을 같이 먹고 사람들은 믹스해서 먹는다. 자신들만의 맛들을 구성하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아르헨티나요리의 구조를 깨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 아이디어의 일부였다.
개인 트레이너로 계속 일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만 두어야만 했다. 나는 스포츠를 항상 좋아했고, 실질적으로 한동안 크로스핏을 하는데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올림픽출전수업을 받았었고 겨루기를 위해 연습했었고 그래서 몸무게가 지금보다 7킬로그램 더 나갔었다. 하루에 대략 6시간을 연습했었다. 더욱이, 크로스핏 연수를 받고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연습하는 곳에서 일자리가 들어왔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을 알았고 장차 요리를 다시 하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래서 개인수업을 하면서 일했다.
그때부터 소셜네트워크에서 인플루엔저로 시작했는가?
그렇다. 내 인스타그램에 피트니스 연습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샐러드를 곁들인 구운 닭고기에만 국한하지 않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섭취를 홍보했다. 다른 옵션을 알리고 싶었다. 나의 일상은 다양한 레시피를 게시해 내 아침식사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몇 달 만에 1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얻었다. 런던시티에서 취직했을 때 모든 게 멈추어졌는데 관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계정을 유지하려고 힘썼다. 지금은 거의 내버려진 상태인데 내 생활의 거의 90%가 “니뇨 고르도”이기 때문에 한 때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는 여러 브랜드들하고도 일할 기회를 주었고 그것은 나에게 직업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내가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면 “쵸리”에서 요리를 하게 초청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직종 내에서 서로 아는 요리사들이고 나는 내세울 게 없는 유일한 요리사였다. 뻬드로는 그렇지 않다고 나한테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보유했었던 팔로워들의 수와 상관이 있었다고 본다. 뻬드로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친구이다. 그는 니뇨 고르도를 위해 나에게 모든 믿음을 걸었고 나는 이를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브랜드들과 일하는 것은 당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지게 했는가?
당신이 어떤 회사들을 위해서 일할 때 다른 브랜드들은 당신을 보게 되고 당신을 부르게 된다. 키친에이드(KitchenAid)하고는 몇몇 소형 와인창고들과 일했고, 어닐러버(Unilever)하고는 4개월 기간의 캠페인에서 일하기도 했다.
한국요리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 나는 완전히 니뇨 고르도에 매달려 있다. 레스토랑이 성장하는 것을 보기 위해 적어도 2년은 거기에 있고 싶다. 내가 동업자는 아니지만 내가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느낀다. 가끔은 매우 힘들 때가 있다. 나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한다. 다른 데에 신경 쓸 시간이 없고 나의 생활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전할 필요가 있고 다시 트레이너를 할 생각이다. 또한 우리는 메뉴판을 바꾸려고 하고 있고 1년에 두 번 바꿀 계획이다. 개업한 지 몇 달 안 되었고, 어떤 요리가 인기 있고 어떤 요리가 그렇지 않은지, 어떤 요리가 준비하는데 힘들고 어떤 요리가 만들기 쉬운지를 보고 있다. 또한 우리가 좀 재미를 느끼도록 바꾸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하루에 100인분 이상의 음식을 만든다. 항상 같은 것을 만들면 지겨워질 때가 있다.
한인교포 자녀들에게 충고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한국인들은 하는 모든 일에 너무 주눅이 들려있다. 의류브랜드들은 성장하고 있고 가게에서 도매로 팔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웹페이지와 그 밖의 것들로 더 전문적인 수준에서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 용기를 내지 않는데 돈을 벌지 못할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의류업종에 종사한다. 옷가게처럼 돈을 많이 벌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적은 월급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으면 잘 해낼 수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가치를 매길 것이라고 본다. 요리에서 동그란 빵을 만들었을 때는 아무한테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빵을 만들 때는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잘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엠빠나다에 들어가는 당근을 1mm 크기의 네모로 잘라야 하면 아무도 안 본다고 해도 그것은 실습이다. 먼 훗날 그 어떤 주문에도 매우 빠르게 자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알면 쌓아온 경험으로 인해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준비된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가장 좋은 자세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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