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소식

패션스타일리스트 정 제랄딘 인터뷰

작성자 정보

  • CAEMCA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caemcafile20200302122641.jpg 


아르헨티나의 한인 커뮤니티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많은 한인 2세들이 현지 사회의 각 분야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재아 상인연합회는 이들 한인 2세들과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에 관해 물었다.

-패션업계에서 이미 유명인사라고 들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달라.

제랄딘 아구스띠나 정으로 올해 23살이다. 스타일리스트, 캠페인 프로덕션, 패션업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부분인 비주얼 머천다이징 등의 일을 하고 있다. 트렌드를 소개하는 패션 프로덕션, 마르띤 피에로 시상식 등을 위한 유명인의 스타일리스트도 등도 하고 있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부터 시작됐는데, 딸이 심심해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잡지를 가져다주면서 패션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나중에는 담당 의사들도 장난감 대신 잡지를 선물해줬다. 그러면서 글씨를 읽고 쓰는 것보다 이미지를 읽는 창의적인 눈을 기를 수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병원에서 지내야 했는가? 어려웠을 것 같다.
첫 심장 수술은 생후 6개월 때 받았고, 한 살, 한 살 반, 두 살 때 재수술을 받는 등 거의 병원에서 살았고 초등학교 때 완치됐다. 하지만 어려움이 지속됐는데, 초등학교 7학년 때 처음으로 혼자 다니기 시작할 때 아베쟈네다 상가에서 납치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당시 지나가던 택시운전사가 소리를 친 덕분에 미수로 끝났지만, 쇼크를 받았다. 중학교 때는 수녀학교라 학교 분위기가 엄하고 까다로워서 적응에 실패했다. 모범생한테 어울리는 학교였는데 나는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 성격에 반항적이라서 학교와 맞지 않았다. 창의적인 부분은 학교에서 알아주지 않았고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건강까지 나빠졌다. 오히려 어릴 때 병원에 있을 당시의 기억이 더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파발로로 박사 팀이 나를 치료했는데, 그때 많이 이야기도 나눴고 아직 마음 깊이 남아있다.

-파발로로 박사와 특별한 추억이 있는가?

파발로로 박사는 나에게 말썽꾸러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이미 착한 아이라면서 내 성격을 바꾸지 말라고도 이야기해 줬다. 당시 파발로로 박사가 40살에서 45살 정도였는데, 나에게 슬쩍 박사님도 말썽꾸러기라면서 말썽을 부리는 사람이 이다음에 더 크게 된다고 말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는 대화였다. 덕분에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나 자신을 그대로 지키는 데 큰 힘이 됐다.

-중학교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부모님 덕분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지지를 보내주시면서 항상 대화를 많이 나눴다. 사실 언니, 오빠가 상당한 모범생이다. 언니는 마떼르 중학교 역사상 최초로 수석 졸업을 한 한국인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면서 절대 형제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 분야에서 달리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면서 내가 나쁜 성적을 받아와도 혼내지 않으셨다. 사실 학교에서 제일 잘한 과목은 미술이었는데, 너무 잘해서 선생님들이 내가 만들었다고 믿어주지를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내 성격이 특이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신 것과 항상 나를 지지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패션 업계에서 어떻게 일하게 됐는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때부터 패션, 리더쉽 등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이나 사설 학원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그때 강좌를 들었던 학원의 관련 인물들은 이제 동료로서 일하는 사이가 됐다. 당시 13살이나 14살 때였는데, 부모님께서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시면서 물질적인 유산보다는 교육의 기회와 삶의 가치관을 우리에게 물려주시고 싶다고 하시면서 나를 지지해 주셨다.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통행 오늘날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패션업계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모든 업무를 다 해내기 위해 하루에 1시간 반을 잤었다. 하루에 40군데를 돌아다니며 일을 한 적도 있다. 쇼핑센터가 열리기 전에 들어가 비주얼 머천다이징 작업을 한 다음, 사진 프로덕션을 가고, 저녁에는 강습을 하거나 유명인사 스타일 조언을 위해 방문을 하는 날들을 지속했다. 대단한 노동 강도였고 쉽지 않았다. 또 패션 업계에서 일을 할 때 무거운 마네킹을 매일 들어야 하고, 옷을 픽업하기 위해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등 상당한 강도의 육체적 노동도 동반한다. 큰 노력과 성실함으로 각자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수년간 패션업계에서 일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

올해는 ELLE 잡지사를 그만뒀고 그전에는 비바 잡지, 라 나시온 등에서도 일을 했다. ELLE 패션 잡지에서는 특별 기사도 쓰고 컬렉션도 만드는 등의 일을 해 애착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고 그곳에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신 어떤 자리에 있고 싶은지 늘 생각한다. 빨레르모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할 당시에는 패션 프로덕션, 패션 커뮤니케이션, 아트 감독 등을 전공하고 강의도 하고 있었는데, 일부는 그만뒀었다. 그러나 빨레르모 대학의 교수이자 동료이기도 했던 친구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면서 생각을 바꿔 작년 중반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나로서는 큰 도전을 한 셈인데, 지금까지 내가 얻은 모든 지식과 경험을 집약시키고 이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며 공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패션 캠페인을 할 때 커뮤니케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패션 전문가로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명품 브랜드, 유명 패션 잡지에서 연락이 오고 런던에서 공부하는 장학금을 제의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작업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다.

-패션 업계에 관해서 이야기해달라.

패션 업계는 경쟁이 심하고 진입하기 어려운 세계다. 그러나 나는 창의성과 재능을 갖춘 업계 일류의 전문가들과 일을 한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본다. 일이 힘들고 나쁜 대우를 받을 때도 있지만 결국 나에게도 진입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가. 오히려 진입하기 어려운 점보다 계속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나에게 어떻게 업계에 발을 들여놨는지 색안경을 끼고 물어보는데, 사실 간단하게 대답해주기 어렵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 내 경험,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과거의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경험과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강한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됐고 내가 이룬 것을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을 준다. 


caemcafile20200302122649.jpg 

caemcafile20200302122656.jpg 


caemcafile20200302122704.jpg 


caemcafile20200302122710.jpg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