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 한국 전통춤 보급하는 크리스탈 유(Cristal Yoo)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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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18세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 뒷골목에서 탄생한 관능적인 춤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 빈민가에는 아프리카, 인디언, 카리브해에서 이주해 온 다양한 이주민들이 정착했을 뿐 아니라, 18세기 말 대거 몰려오기 시작한 유럽계 이민자들도 다수 거주했다. 탱고의 우아하면서도 열정적인 춤사위는 이 같은 초기 탱고를 즐기던 이들 간에 존재했던 이국적이며 문화적 혼합을 보여준다. 탱고는 차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촌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탱고는 확장을 거듭해 20세기 초에는 유럽과 미국에까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아르헨티나의 황금기 (1930-1950), 나라의 번영이 정점을 찍은 그 기간에는 대중성이 폭발했고 새로운 스타일의 탱고가 속속들이 등장했다. 80년대에 탱고는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를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며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전세계에 탱고학교가 있고 2009년에는 UNESCO로부터 세계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핫 플레이스인 플로리다, 보까, 뿌에르또 마데로에는 어김없이 탱고를 추는 커플을 목격할 수 있다.
탱고의 본고장에서 현지인보다 더 탱고를 사랑하며 탱고를 잘 알 뿐 아니라 탱고 보급에 열정적인 한국인이 있다. 생뚱맞게도 그녀의 전공은 한국무용으로 현지에서는 크리스탈 유로 알려졌으며 한국 이름은 유수정이다. 그녀는 또한 한국 전통춤과 탱고, 살사, 사물놀이 등을 결합한 퓨전 춤 동아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리랑’의 창단멤버이기도 하다. 가진 재능으로 한인회 행사에 멋진 춤사위를 선보였는데 지난 해 11월 치러진 한국문화의 날 행사에서는 부채춤을 선보여 큰 갈채를 받기도 했다. 다소 수줍은 듯한 외모의 그녀가 춤을 출 때만큼은 온 몸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유수정 씨와 대담을 나누었다.
기자 : 한국무용 전공자로 아르헨티나에서 탱고에 전념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가?
유수정 : 정말 우연이었다. 2004년 한국체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내게 떠오른 생각은 무용의 대중화였다. 당시 한국은 생활체육이 유행이었는데 춤의 대중화도 막 도입되던 시기라 댄스 스포츠가 유행이었고 그 중 하나가 살사(Salsa) 춤이었다. 살사를 배우면서 상대방의 리듬을 느껴야 춤을 출 수 있으며 춤도 상대와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같은 시기에 탱고의 전도사로 알려진 공명규 씨가 ‘인간극장’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파트너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 세르반테스 극장에서 탱고 공연을 하게 됐다. 이것이 탱고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탱고의 본고장에서 본격적으로 탱고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3개월만 하던 것이 1년이 되고 3년이 됐고 15년이 됐다. 원래는 탱고를 배운 후 강사로 재직 중이던 목원대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제대로 탱고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나 탱고가 좋았는지 중간에 이과수, 바릴로체 관광을 무료로 할 기회도 있었는데 탱고가 너무 좋아서 모두 거절하고 탱고에만 몰두했다
기자 : 그러다 혼기도 놓쳤고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지냈으니 주위에서 걱정했을 것 같다.
유수정 : 그 당시에는 정말 ‘미쳤었다’. 이왕 할거면 완벽하게 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탱고를 배우기 위해 밀롱가(밀롱가(Milonga):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및 이벤트)를 찾아 다녔는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든지 춤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젊은 층보다는 연령대가 있는 분들이 다수였다.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이 시간이 흘렀다. 한국인으로서 언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춤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몸의 언어가 아닌가?
기자 : 탱고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들었다. 부군 호세 다니엘 모레노(Jose Daniel Moreno) 씨는 대표적인 아르헨티나 내 지한파요, 친한파로 알려졌다.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됐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유수정 : 남편을 만난 것은 2004년 꼰피떼리아 (confiteria. 케익이나 과자, 커피, 차를 파는 곳) 라 이데알 (La Ideal)에서였다. 그는 당시 매장 매니저였는데 꼰피테리아 라 이데알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알려진 유서 깊은 과자점으로 고객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며 오페라 등 무대가 있었다. 이 무대에서 탱고쇼를 했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갈 때 다니엘이 동행해 주었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탱고계에 들어갈수록 외국인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가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수적인데 언어가 되지 않으니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런데 다니엘은 신기하게도 나의 짧은 까스떼자노(Castellano. 아르헨티나에서 쓰이는 스페인어 방언)을 척척 알아 들었다. 그와 의기투합해 2008년 공연팀을 만들었고 이 팀이 현재 한국인과 현지인이 동참해 만든 춤 동아리인 ‘부에노스 아리랑’까지 이어졌다.
기자 : 부군께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고 들었다. 특히 한국무용과 탱고의 결합도 그분의 제안이라고 들었다.
유수정 : 그렇다. 꼰피떼리아에서는 폴클로레, 탱고쇼가 있었는데 나는 먼저 인트로(intro)로 살풀이 춤을 추었고 그 후 탱고춤을 추었는데 관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다니엘은 음악 애호가로 가야금 음색에 열광했다. 이때쯤 아르헨티나에 명상, 요가, 중국무술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와 같은 분위기도 한국 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한 것 같다. 그러면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춤을 알리고 보급할 것에 대한 구상도 하게 됐다. 내가 춤을 추면 다니엘이 모든 것을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가르칠 장소가 없어 물색하던 중에 산 마르띤 문화센터 (Centro cultural de San Martin)에서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리고 이 같은 활동은 계속 확장되고 이어져서 한국학교의 한인 2, 3세들에게 한국 전통춤을 가르치게 됐다.
기자 : 부군의 한국사랑이 극진하다고 하는데 어떤가?
유수정 : 그는 영상촬영에 재능이 있는데 한인 예술인들의 비디오를 대부분 그가 제작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美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자 : 정말 영화같기도 하고 소설처럼 들린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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