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가 된 여성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에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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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상은 한국에 설치된 원본의 복제본으로,
일본 군대에 의해 온갖 폭력에 시달렸던 ‘위안부’ 여성들을 기리는 헌정물이다.
그들의 기억과 정의를 향한 외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강한 외교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쓴이 : 마리아 필라르 알바레스
이번 주 목요일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에서는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질 예정이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로 착취당한 ‘위안부’ 여성들을 기리는 소녀상이 전시된 것이다.
이 조형물은 라 루랄(La Rural)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Pabellon Amarillo Stand 1705)
이 예술 작품은 한국의 예술가 김서경과 김운성 부부가 제작하였고, 2022년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지만 전시되기까지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이 조형물은 같은 작가들이 만든 원작 **‘평화의 소녀상’**의 복제품으로, 전통 한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의자에 앉아 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끌려갔던 당시의 복장을 반영한 것이다.
소녀의 어깨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가 앉아 있으며, 소녀 옆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어, 관람객이 함께 앉아 정의를 요구하고 그 긴 투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사진: 이재원 / AFLO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0일,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되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형물이었다.
그 이후로, 중국 등 제국 일본군의 성노예 제도의 직접적 피해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기억 운동에 참여한 국가들에서도 평화의 소녀상과 관련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세워졌다. 이 조형물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알려진 여성들을 기억하고, 역사적 정의를 요구하는 세계적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적 배경 : 일본군 ‘위안부’ 제도
추산에 따르면, 20만에서 4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일본 제국군의 성노예 제도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피해 여성들은 다음 국가 출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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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본토, 대만,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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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인 식민지 주민의 딸들 등.
이 시스템은 현대 전쟁사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자행된 인신매매 기반의 성착취 범죄로 평가받다.
피해 여성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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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매우 어린 소녀들이었고, 일반적으로 처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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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극빈층 출신이며,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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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납치, 가정에서의 강제 연행, 거짓 일자리 유혹,
또는 이웃이나 친척에 의해 팔려가는 경우도 있었음
‘위안소(慰安所)’에서의 참혹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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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최대 30명 이상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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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성폭력뿐 아니라, 구타, 모욕, 고문 등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자행됨 -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못하거나, 살해된 여성들도 존재함
이 모든 사실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국제적 인권 문제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억과 연대의 조형물이다.
“위안부”를 기념하는 설치 미술 작품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플로레스 지역에 있는 한국인 거리에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성노예 제도에 억제된 여성들의 고통과 기억을 되새기기 위한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이 설치 미술 작품은 한국인 커뮤니티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기념하는 장소로, 평화와 정의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의 상징으로 기능하다.
사진: Pilar Álvarez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중 성노예 피해자들, 즉 "위안부"는 여성의 권리와 역사적 정의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어 왔다. 이 투쟁은 국경을 넘어 글로벌한 연대와 인식의 표본이 되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을 만나, 그녀의 헌신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비록 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유산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다.
무력 충돌과 정치적 억압의 시기에 성폭력을 강력히 규탄하는 세계적인 맥락에서, 공공장소에 평화의 동상을 복제하여 설치하는 것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연대와 인식을 촉진하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며, 특히 일본과 한국 간의 외교적 긴장을 초래하고 있다. 역사적 기억 처리와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한 합의 부족은 두 나라에서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2015년 일본과 한국 간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는 동상을 "더 적절한 장소"로 이동시키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이는 양국 간 관계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인권에 대한 정치적 균열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시각에 영향을 미쳤으며, 보수당은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과거의 논의를 최소화하려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에서의 평화의 동상은 부정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자 역사적 기억의 표본이다. 이 동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시될지, 철거 압박을 받을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그 존재는 집단적 기억의 힘과 정의에 대한 헌신을 강조한다. 이 의미에서, 한때 침묵되었던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제 가시화되었으며, 우리에게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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