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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 이경아(Sandra Lee), 아르헨티나 김치 홍보대사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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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을 겨우 넘긴 산드라 리 가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아르헨티나 투쿠만주 산미겔을 잇는 기차 창밖을 바라보며 할머니와 함께 여행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그녀는 전혀 다른 색깔과 맛의 세계를 처음 발견했다.


“기차에서 먹었던 음식과 풍경이 기억나요. 제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라파스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 여행은 저에게 계시 같은 경험이었어요.” 완벽한 피부와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 지금의 산드라 리 가 이렇게 회상한다. 


할머니는 북한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산드라는 1970년대 태어났고, 두 살에 고아가 됬었다. 그러나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붙잡아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외할머니 봉서우였다. 당시 사진 속 그녀는 마치 마오쩌둥 포스터에서 튀어나온 듯한 강인한 모습, 그야말로 ‘호랑이 같은’ 여인이었다. 다행히도 세월은 그녀를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었다.

“할머니가 저를 안아준 건 딱 한 번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그분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이해해요. 저를 지키고, 본인이 없어진 뒤에도 제가 잘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 했던 거죠.”


산드라 리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섬유업을 하던 그녀는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의무가 아닌 순수한 즐거움으로 전문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그 중 하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나 십대였을 때는 한국 문화에서 여자가 요리를 잘하는 게 정말 중요했어요. 남편과 가족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거죠. 물론 지금 그런 말을 한국 여자한테 하면 바로 혼나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산드라 리는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스페인어에서 바로 아르헨티나 ‘포르테뇨’식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그 맑고 단정한 얼굴로 “quilombo(난장판)”라 말하고, 차분한 태도로 “그 해에는 달러가 완전히 폭등했죠”라고 설명하는 모습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산드라 리는 자신의 이민 경험을 1인칭으로 들려주면서, 음식이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또 다른 언어임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원래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어요. 그래서 아홉 살, 열 살 때는 부엌에 가서 하나하나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처음에는 쌀 씻는 요령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배우지만, 사춘기가 되면 집안 어른들이 공장에서 일하니까 가족 모두의 밥을 해야 할 때가 오죠. 그런 식으로 우리 가족의 모든 여자들이 요리를 배우게 된 거예요. 그냥, 하면서 배운 거죠.”



한국 철학에서 음식은 곧 ‘약’입니다.
당신이 먹는 모든 것은 몸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양한 색깔과 채소 등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한국 음식은 한 번 맛보면 계속 찾게 되는 음식입니다. 왜냐하면 산미, 단맛, 짠맛이 조화를 이루는 그 특별한 맛 덕분에 몸이 스스로 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 요리와 한국 요리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경험하셨어요? 이 길을 선택할 때 분명 이런 점들,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도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저요? 전혀요! (웃음) 이런 일은 마흔이 넘어서야 찾아왔어요. 예전에는 매일 의무적으로 음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제가 가장 하기 싫었던 게 바로 ‘요리’였거든요! 제가 요리를 하고, 더 나아가 지금처럼 가르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절대요!


제가 19살에 혼자 살기 시작해 21살에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어요. 평생을 섬유업에서 일하며 살았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도 많이 겪으면서 두 딸을 혼자 키웠어요. 그래도 감사하게도 잘 교육시키고 좋은 학교에 보내서, 두 아이를 정말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었어요.
저는 플로레스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여성 사업가로 성장했고, 사업도 정말 잘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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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가 1600년경 한국에 들어오면서 김치는 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요. 다시 말해,

모든 발효 식품은 항상 소금물에 잠겨 있어야 해요.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은 쉽게 상해버리지만, 김치는 고춧가루로 완전히 덮여 있기 때문에 보호돼요.

고춧가루가 자연 보존제처럼 작용하는 것이죠.



—어느 순간에 그렇게 큰 전환을 하게 된 거예요?
마흔이 넘어서였어요. 모든 수월했고, 가게에서도 제가 없어도 될 만큼 자리가 잡히니까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마흔이 되면 늘 그래요. 내가 지금까지 뭘 했나, 뭘 했어야 하나, 뭐가 부족한가… 그런 생각들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원래부터 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IAG(요리학교)에 등록했죠. 그때 제 나이 47세였고, 젊은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시험 앞두고 긴장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 어느 교수님이 저에게 “김치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사실, 김치는 늘 한국 사람들에게도 고민거리였어요.


—왜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김치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첫째, 냄새가 강하고, 둘째로는 당시엔 음식 문화가 훨씬 더 보수적이었어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뭘 먹죠?  밀라네사, 비페, 샐러드, 파스타… 거의 거기서 끝이었어요. 그런데 김치는 맵고, 발효되고, 냄새도 강하고, 이상한 재료가 잔뜩 들어가 있으니까요. 거부감이 많았죠. 저의 집도 항상 마늘 냄새, 한국 음식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데려오는 게 부끄러웠어요. 친구들 집에 가면 버터 냄새, 비스코초 냄새,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우리 집은 마늘과 발효 냄새… 간장 냄새… 그런 것뿐이었으니까요.


—맞아요. 어릴 땐 항상 남의 집이 더 좋아 보이죠.
그렇죠. 그런데 IAG 교수님이 제게 김치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이미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고 있던 때였어요. 발효 음식의 건강 효과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오고요. 그런데 교수님도 김치를 만들 줄 모르니까, 저는 교회에 계신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배우기로 했어요. 우리 집 부엌으로 모시고 와서 재료를 전부 계량해서 레시피를 만들었죠. 그래야 반복해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김치를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갔는데, 다들 너무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때 깨달았어요. 아, 누군가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줘야겠구나.
팔레르모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어린 동기 한 명이 그 식당에서 김치를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줬는데…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왜요?
아무것도 맞지 않았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많은 셰프들이 발효에 관심은 있지만, 그 뒤에 있는 역사도, 비밀도, 맥락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마음속으로 결심했어요. 내가 제대로 공부해서, 내가 제대로 알려야겠다.
그렇게 IAG 사람들과 이야기했고, 그 후로 한국 음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엄마와 함께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제 인생 곳곳에서 많은 ‘엄마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그분들께 한 가지씩 레시피를 부탁했죠. 그래서 제 레시피 책은

제가 만났던 엄마들, 그분들의 레시피, 그리고 제가 그분들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그 음식을 처음 맛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담은 이야기 모음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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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열풍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지난 20년 넘게 한국 문화가 아르헨티나와 전 세계에서 강하게 자리 잡아온 데에는, 바로 한국 정부가 여러 차례 정권을 거치며 모든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문화 확산을 추진해 온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K팝 그룹들이 전 세계 10대들의 취향을 주도하고, 오징어게임 같은 드라마나 기생충 같은 영화가 전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이미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있고, 전 세계에는 김치 글로벌 홍보대사도 다섯 명이나 있어요.”라고 요리사인 그녀가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다섯 명 중 한 명이 바로 그녀로, 이 지역에서도 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김치 이야기를 할 때면 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칩니다.


“발효 음식은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재료들이 하나의 맛을 이루는 거예요. 예를 들어 파스타는 만들어서 바로 먹으면 끝이지만, 김치는 그렇지 않아요. 김치가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기후와 지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사람들은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야만 했거든요.”


그녀는 덧붙여, “수세기 동안 재료가 바뀐 부분도 알아야 해요. 김치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재료 중 하나가 바로 고추예요. 그런데 고추가 어디서 왔을까요? 남아메리카죠. 김치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예전 문헌에는 어떻게 발효했는지 기록도 남아 있어요. 그런데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건 1600년 이후예요. 그때 비로소 김치가 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라고 설명합니다.


즉, 모든 발효식품은 항상 소금물 아래에 있어야 해요. 물에 잠기지 않으면 쉽게 상하지만, 김치는 고춧가루로 덮여 있어 보호받아요.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셈이죠. “그럼 최고의 김치 레시피는 무엇인가?” 그런 건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고, 각자의 레시피가 ‘그 집 김치’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김치 워크숍에서 ‘김치의 메시(Messi)’라고 불리는 김치 이야기도 하시는 거죠?”
—그렇죠. 처음엔 제 수업에 스무 명 정도가 왔어요. 대부분 김치나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었죠. 이미 동남아시아 여행 경험이 있거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지만 한국 문화는 잘 모르는… 그런 ‘푸디’들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수강생들이 바뀌기 시작했고, 한국 드라마 팬인 나이 많은 분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게 바로 팬데믹 때였어요. 많은 사람이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계속 먹고 또 먹잖아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대체 저건 무슨 음식이야?” 하고 궁금해하기 시작한 거죠. 게다가 이미 김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봤고요. 그래서 우리는 김치와 관련된 소통을 더 강화했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김치의 날(International Kimchi Day)이 있고, 아르헨티나에는 국가 김치의 날까지 있어요. 알고 있었어요? 바로 11월 22일이에요. 이 날짜는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공식 승인된 것으로,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초로 ‘국가 김치의 날’을 제정한 나라예요.


요리사로서 제 꿈은 정말 요리고 싶을 때만 요리하는 것이에요.

저는 작은 바(Bar)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 생각에 음식은 정확한 익힘 정도와

제때, 제 온도로 먹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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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바꿔서, 왜 한국 음식이 이렇게 팬이 많을까요?
— 제 생각에는, 한국인은 정말 다양하게 먹기 때문이에요. 채소도 많고, 고기와 생선, 닭고기 등 먹는 것이 아주 다양하죠. 한국 식탁은 한 접시에 세 가지가 나오는 식이 아니라, 밥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채소, 계란, 생선, 고기 등이 함께 나오는 형식이에요. 한 끼에 다양한 것을 먹는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식탁 위에 펼쳐진 수많은 색깔, 작은 반찬들, 그리고 완전히 다른 맛들!


한국 철학에서는 음식이 곧 약이라고 해요. 먹는 모든 것이 몸에 이롭기 때문에 다양한 색,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하죠. 그리고 요즘은 과학적으로도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증명되어 있어요. 저는 늘 말해요: 한국 음식은 한 번 빠지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고. 왜냐하면 새콤함, 단맛, 짠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중독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몸이 그 맛을 기억하고 또 찾게 되죠.


이런 점들이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문화 확산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저는 가끔 요리하는 공간에서 수업을 하는데, 주제를 정해서 진행하고 때로는 평범한 한국인 어머니들을 초대해요. 그분들이 와서 요리하면 사람들이 와서 같이 먹고, 저는 그걸 인스타그램으로 전해요. 그리고 **‘김치 루트(La ruta del kimchi)’**도 하고 있어요.

더 말해줘요


— 김치를 홍보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나 지방의 로컬 김치 버전을 찾아다니는 활동이에요. 처음 수업을 나갔던 곳이 몬테비데오에 있는 La Obrería라는 곳이었어요. 한국 음식 붐이 일었을 때였죠. 최근에는 마르델플라타에서 협업을 했고, 우수아이아에서도 했어요… 저는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인터뷰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그래서 가능한 모든 곳에 가보고 싶어요. 제 채널은 Sandra.kimchi예요.


그리고 책은요? 언제 나와요?
— 사실 제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요. 저는 엄마와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제 인생에서 많은 엄마들을 만났고 그분들에게 하나씩 요리를 배웠어요. 그래서 제 요리책은 그 엄마들과의 만남, 그들의 레시피, 그리고 그 음식을 처음 맛봤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을 담은 책이 되길 바라요.



제가 어렸을 때나 십대였을 때만 해도, 한국 문화에서는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했어요. 남편과 가족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죠.

물론 지금 그런 말을 한국 여자에게 하면 바로 혼나요!



어떻게 당신의 요리를 만들어요?
—저는 냉장고를 열어 보고 뭐가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걸 좋아해요. 전통 레시피에 얽매이지 않고요. 구조나 조리 과정은 지키지만, 레시피 자체는 꼭 그대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요리학교)는 기본을 배우고 전통의 가치를 알기에는 좋지만, 그 다음엔 ‘재료가 없어서 못 한다’는 생각에 갇힐 필요 없어요. 재료가 없으면 대체하면 돼요. 끝.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게 되는 거예요.


올해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에도 나온 한 비구니 스님이 있는 사찰에서 두 달간 지낼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의 요리는 아주 단순해요. 마늘, 양파, 고기를 쓰지 않아요. 절 음식이죠. 그런데 정말 맛있어요. 상상해봐요, 아름다운 산속에 사시고요. 제가 그분에게 배운 건 한국 장(醬)의 가치예요. 간장, 발효 과일로 만든 장 같은 것들요. 스님은 그걸 직접 만드시는데, 자기만의 장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그걸 아르헨티나 요리사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어요.



무엇을 꿈꾸나요?
—요리사로서 제 꿈은 하고 싶을 때만 요리하는 것이에요.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앞으로는 차고(garage) 쪽 공간에서 열 명 이하만을 위한 요리를 하고 싶어요. 바(Bar) 형태로요. 왜냐하면 음식은 정확한 상태와 온도로 먹어야 맛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비결이에요.


셰프가 아무리 뛰어나도, 음식이 손님에게 잘못된 타이밍이나 상태로 가면 그 경험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바 형태로 운영하면서 한 달 정도 메뉴를 정해두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젊은 요리사들이 와서 그 장소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마치 의류 업계의 멀티브랜드숍처럼요. 제가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 된다’를 고르고, 일종의 큐레이션을 하되 제가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닌 방식. 그런 개념의 ‘차고 주방’을 만들고 싶어요.

보시겠어요? 저는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걸 가장 좋아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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