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 박종휘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작성자 정보
- CAEMCA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40 조회
- 목록
본문
“음악 통해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 연결하는 가교와 동반자 역할 해나갈 것”
한국-라틴아메리카 잇는 문화예술 플랫폼과 국제 음악 네트워크 구축 목표
악보 너머의 마음을 읽다, 드라마를 지휘하는 ‘호흡의 여백’
멈추지 않는 선율을 위하여, 음악가들의 미래를 잇는 길
국경을 넘어 마음을 연결하는, 다양성이 빚어낸 아름다운 하모니
태양과 열정의 땅, 135년 역사가 흐르는 코르도바의 무대
부산의 꿈을 세계의 무대로, 우리 예술이 꽃필 진정한 제작 극장을 꿈꾸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이라는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기자] 안데스의 서늘한 바람과 광활한 팜파스의 대지가 빚어낸 탱고의 애환, 그리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남긴 낭만이 공존하는 아르헨티나의 풍경 속에는 언제나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음악이 흐른다. 지휘자 박종휘는 그 남미의 깊은 예술적 정취와 음악적 숨결 속에서,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를 통해 사람과 문화를 잇는 마법 같은 가교를 놓아가고 있다.
▲박종휘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미국 WMU, 모스크바 음악원 등지에서 정통 지휘 수업을 다진 그는, 지난 7월 일시 방한한 가운데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남미 클래식의 진정한 가치와 음악가로서의 진솔한 삶의 여정을 풀어놓았다.
파라과이 아순시온 국립대 지휘과 교수 및 아순시온 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거친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이자 남미 최초의 대학들이 자리한 유서 깊은 문화 예술의 도시 코르도바를 품은 주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가 예술감독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떼아트로 리베르타도르 산 마르틴(Teatro del Libertador San Martín)’은 135년의 장엄한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극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남미 클래식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우루과이, 브라질, 멕시코,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등 남미 전역의 유수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며, 음악을 ‘살아 있는 언어’이자 ‘인간의 드라마’로 승화시키는 조율자로 자리 잡았다.
모차르트와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에 이르는 방대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그가 체득한 것은, 오페라 피트 안에서 성악가의 호흡을 읽고 드라마의 서사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지에서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이끌며 후학을 양성해 온 그는,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과 진정성을 믿는 진정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특히 팬데믹의 고립 속에서도 “음악은 멈출 수 있어도 음악가들의 연결은 멈춰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15개국 음악가들을 하나로 묶어낸 ‘라틴 아메리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그의 리더십을 증명하는 결정체였다.
▲박종휘 지휘자의 오케스트라 편성. 사진 오른쪽 앞쪽의 남미 전통 의상(판초)을 입은 연주자가 안데스 하프(또는 라틴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이번 인터뷰는 국내 음악계가 마주한 구조적 한계와 치열한 입시의 병목 현상 속에서 길을 잃어가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 한국과 남미를 잇는 문화예술적 비전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이라는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라”고 후배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며, 음악가는 악보를 넘어 인문학적 소양과 타인에 대한 깊은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부산 출신인 그는 고향의 부산오페라하우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해외 프로덕션을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소비형 극장’이 아니라, 부산의 성악가와 제작 인력이 실제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생산형 제작극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서울시향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특정 예술가에게 권한과 예산이 집중되지 않는 투명한 운영 시스템과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함을 역설한다.
그의 꿈은 단순히 더 큰 무대에 서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다가오는 2027년 한국·아르헨티나 수교 65주년을 맞아 양국의 음악적 자산을 잇는 지속 가능한 문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부산과 코르도바가 실질적으로 교류하는 살아 있는 예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문화의 가교’가 되겠다는 마에스트로 박종휘. 지구 반대편의 낯선 대지 위에서 영혼의 울림을 전파하며 우리 시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지향점을 일깨우는 그의 행보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희망의 서사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한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우리에게 남미는 물리적·정서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본인에게 남미는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가?
남미는 지리적으로 멀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5년 가까이 지내며 완전히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었다. 이곳은 음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곳으로, 유럽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역사와 정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클래식 연주 시 단순히 악보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삶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유럽 이민자들의 문화적 기반 위에 오케스트라 수준과 음악적 전통이 탄탄하며, 남미 특유의 열정과 자유로운 감성이 더해져 독특한 음악 문화를 만든다. 한국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음악 접근을 남미의 풍부한 감성과 결합하는 법을 배웠으며, 남미는 단순히 해외 무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한국과 남미를 연결하는 문화예술의 가교 역할을 하며 함께 성장할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
처음 남미에서 지휘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남미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무대와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경험하고 싶어 한국 정부가 파견하는 KOICA를 통해 남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파라과이 최고의 지휘자 마에스트로 루이싸란을 통해 아순시온 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초대되었고, 파라과이 국립 아순시온 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의 요청으로 지휘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파라과이에 머물게 되었다. 처음 객원지휘로 남미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때 연주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진정성에 감동받았고, 음악으로 소통하는 데 장벽이 없음을 실감했다. 이후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 및 객원지휘를 이어가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제안을 받아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펼치고자 수락했다. 돌이켜보면 남미는 우연히 찾아온 무대였지만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과 변화를 준 소중한 공간이며, 음악이 국경과 문화를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 강력한 언어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박종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연습 중 단원들 사이에 들어가 열정적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
현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느낀 남미 클래식 음악계만의 특별한 매력이나 정서는 무엇인가?
남미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음악이 삶과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단순히 악보를 정확히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의미, 감정, 작곡가의 의도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토론한다. 또한 남미의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직장을 넘어 가족 같은 공동체라는 느낌이 강해, 서로를 배려하고 공연의 성공을 모두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유럽의 깊은 클래식 전통에 자신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조화시켜 베토벤, 브람스, 말러를 연주할 때도 남미 특유의 따뜻한 색채와 생명력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경험을 통해 기술적 훌륭함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정성과 공감이라는 사실을 배웠고, 지금도 연주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세계 5대 극장 중 하나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아트로 콜론(Teatro Colón)’에서의 지휘 등 남미에서의 경력은 어떤 음악적 자양분이 되었는지.
남미에서의 경험, 특히 세계적인 5대 오페라 극장에서의 지휘는 음악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콜론 극장(Teatro Colon)은 유럽의 거장들과 명성 있는 음악가들이 거쳐 간 무대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다니엘 바렘보임. 칼뵘 등 수많은 유명 지휘자들이 지휘를 했다. 특히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유년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48년 콜론극장 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 연주자로 음악가 생활을 데뷔했다. 당시 클라이버에게 화성악을 가르치던 선생의 아들과 인연이 있어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아르헨티나엔 푸치니, 생상스가 와서 살았고 세르게이 하챠트리안과 마누엘 퍄야 살았으며, 하챠트리안과 마누엘 파야는 코르도바에 코르도바 주립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남미에서 배운 가장 큰 자산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로, 유럽의 탄탄한 전통과 남미 특유의 자유로운 감성 및 뜨거운 에너지가 공존하는 것을 경험했다. 다양한 국적의 연주자들과 작업하며 지휘자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과 감성을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조율자임을 깨달았고, 한국의 치밀함, 미국의 체계적인 교육, 남미의 소통과 예술적 자유가 어우러져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코르도바 주립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된 특별한 일화와 도시 내 유서 깊은 극장의 역사에 대해 알려달라.
당시 상임 지휘자가 있었음에도 단원들의 투표 요구로 내가 선택되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기존 지휘자와 갈등이 생길 상황이었지만, 그는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이후 코르도바의 문화와 극장을 깊이 접하게 되었는데, 이곳의 '리베르타도르 산 마르틴' 극장은 아르헨티나 독립 영웅 산 마르틴의 이름을 딴 135년 역사의 극장이다. 과거 세계 4대 강국으로 꼽힐 만큼 부유했던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60%가 이탈리아계로, 당시 이탈리아 성악가들이 콜론 극장에서 한 달 공연한 수익으로 이탈리아에 집을 살 정도였다.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도 이탈리아 아이가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오는 내용을 담고 있을 만큼 당시 풍요로운 교류와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코르도바 극장의 건축적 특징과 건축 이후 아르헨티나의 음악적 분위기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도 궁금하다.
코르도바 극장(리베르타도르 산마르틴 극장)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은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탄부리니가 설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 극장이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과 규모 및 구조가 비슷한 것처럼,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 코르도바 극장은 베네치아 베니스 극장, 트리에스트 베르디 극장, 시실리아 벨리니 극장,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과 규모 및 구도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같은 건축적·문화적 배경 덕분에 아르헨티나의 음악적 흐름은 독보적인 스타일로 발전해 왔다.
역사적으로 코르도바는 1652년 남미 최초의 대학 중 하나가 설립된 곳으로, 과거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보다 우수한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유서 깊다. 과거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이 바이올린과 하프 등 악기를 들여와 선교하며 파라과이와 볼리비아까지 음악과 교육을 전파했고,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이탈리아풍 건축물로 채워져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념비적인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94년 역사를 지닌 코르도바 주립 교향악단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단체로 자리 잡았다. 합창단, 바로크 챔버 합창단, 현대음악 합창단, 관악단, 탱고 오케스트라, 발레단을 비롯해 아카데미 합창단·발레·산마르틴 오케스트라 등 주립 소속 예술 단체만 9개에 달하며, 이 거대한 단체들을 통해 아르헨티나만의 풍부하고 독창적인 음악적 분위기를 꽃피우고 있다.
코르도바는 우리나라의 부산과 같은 제2도시인데, 코르도바 극장의 공연은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 그리고 국내 오페라 현실과 비교했을 때 시사점은 무엇인가.
코르도바 극장은 오페라와 발레를 각각 2작품씩 올리며, 한 작품당 6회에서 8회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활발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콜론은 오페라와 발레 각각 6개 작품을 총 10회 12번 공연을 한다 . 이와 비교해 한국은 국립오페라단이 전용 극장도 없이 예술의전당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 마침 부산에 오페라하우스가 생기는 것은 축하할 일이오나, 향후 운영 시스템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 우려된다.
모차르트부터 베르디, 푸치니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지휘하며, 자신만의 오페라 해석론과 성악가의 드라마를 극대화하는 ‘음악적 호흡’은 무엇인가?
오페라 지휘의 핵심은 박자가 아닌 ‘드라마를 지휘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량만큼이나 무대 위 인물의 감정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리허설 전부터 성악가의 대사와 감정 흐름을 먼저 파악하여 그에 맞춰 오케스트라의 호흡을 조정한다. 특히 악보에 얽매이기보다 성악가가 자연스럽게 숨 쉬며 감정을 표현하도록 ‘호흡의 여백’을 만들어 주고, 오케스트라는 노래를 덮지 않고 빛나게 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모차르트의 균형감, 베르디의 열정, 푸치니의 서정성 중심에는 항상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이야기가 관객에게 깊이 전달되도록 음악적 호흡을 조율하는 데 집중한다.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겠지만 가장 좋아하고 자신하는 레퍼토리가 있다면.
아주 많지만 추려서 말하자면 말러 교향곡 전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시벨리우스 작품 등이고 오페라는 베르디 작품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클래식 음악 생태계에서 활동하며 겪었던 가장 큰 도전과 그 극복 과정은 무엇인가?
활동 초기 가장 큰 도전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 단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는 결국 사람들의 공동체이기에, 실력은 물론 진정성과 꾸준함으로 다가갔다. 일방적인 방식을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연주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내 강점인 치밀한 악보 분석과 체계적인 리허설 방식을 접목해 서로의 장점을 조화롭게 융합하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지휘자는 자신의 색깔을 강요하는 자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하나의 소리로 조율하는 리더임을 깨달았고, 매 리허설마다 진심으로 소통하며 단단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도전은 나를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한국과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음악적 가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미국 WMU, 파라과이 아순시온 국립대 지휘과 교수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 지휘자로서 테크닉적 전달을 넘어, 지휘 전공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 역량과 음악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지휘자의 언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휘는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 같지만 언어를 넘어서는 예술이다. 한국, 미국,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과 연주자를 만나며 좋은 지휘는 말보다 음악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점을 확신했다. 학생들이 테크닉을 먼저 배우려 하지만, 박자와 제스처, 악보 분석 같은 기본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 음악을 연주하는가'에 대한 철학이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신의 해석으로 재창조해 오케스트라와 관객을 설득하는 사람이므로, 역사, 문학, 미술, 철학 등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또한 오케스트라는 수십, 수백 명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이므로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며, 존중과 소통, 리더십이 함께할 때 하나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지휘자가 되기 전에 좋은 음악가가 되고, 좋은 음악가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고 싶다.
팬데믹 기간 중 창설한 ‘라틴 아메리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5개국 음악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이들을 하나로 묶는 본인만의 리더십 철학은 무엇인가?
팬데믹으로 공연이 멈추고 오케스트라가 해체 위기를 겪던 당시, '음악은 멈춰도 음악가들의 연결은 멈춰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이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처음에는 작은 프로젝트였으나 현재 15개국 이상의 음악가가 참여하는 국제 공동체로 성장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리더'가 아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할 환경을 조성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이끄는 '연결하는 리더'다. 나는 다양성이야말로 최고의 경쟁력이라 믿는다. 각 나라의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고 이를 조화롭게 융합할 때 비로소 창의적인 음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으로 국가와 문화를 잇고, 젊은 음악가들에게 국제적인 무대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평화를 위한 콘서트’를 통해 한국의 민요와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을 함께 선보였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양국 문화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평화를 위한 콘서트’는 음악이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국 민요와 라틴아메리카 음악은 달라 보이지만 무대에서 함께 연주될 때 그 안의 정서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국 민요가 연주될 때 관객들은 가사를 몰라도 음악이 전하는 그리움과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해 주어 음악이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임을 실감했다. 반대로 한국 관객들이 라틴아메리카 작품을 들으며 열정과 삶의 에너지를 공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문화교류는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며, 음악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평화의 언어라고 믿는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겪고 있는 실력 있는 인력의 과잉과 무대 부족이라는 병목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가장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인가?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를 배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설 무대는 턱없이 부족한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오케스트라 확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 공연장 및 예술기관 활성화, 청년 음악가 레지던시, 실내악과 현대음악, 지역사회 연계 프로젝트 등 연주 환경의 다변화가 절실하다. 특히 해외 오케스트라, 축제, 교육기관과의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음악가들의 활동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는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예술행정과 문화정책 또한 단기 지원에서 벗어나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관이 함께 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의 음악가들이 모여 협력하고 창조하는 국제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부산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작으로 정명훈 클래식부산 예술감독이자 라 스칼라 예술감독이 라 스칼라 극장 프로덕션 ‘오텔로’를 통째로 들고와서 부산 음악계의 반발이 크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부산 출신으로서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누구보다 고대하
관련자료
-
링크
-
다음